- 그림에 임하는 얼마간의 생각
"백치의 머리와 색맹의 눈으로' 밝히건대 나 는 소위 그림 그리기를 시작하면서 내 사랑 나의 그림에 대하여 싸움에 임하는 장수처럼 이 말을 출사표로 던졌다. 지금까지의 성과와 관련하여 앞으로 내가 어찌 변할 지는 나도 모른다. 그러나 내 그림이 이 지상에 존재하는 한 그것들은 백치화 색맹의 심미적 소산이라 는 사실을 고백처럼 밝히고 싶다.
매우 엉뚱하게 생 각하실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 그림 그리기에서 "백치의 머리와 색맹의 눈"을 좌우명으로 내세운 연유부터 말하자. 그림은 아무래도 새롭고 특이해야 한다. 그러나 새롭고 특이하다는 것이 어디 생각처럼 되는가. 어느 의미에서 화가에게 배설하듯이 계속 해야 하는 일상적 작업이 그림 그리기이다. 새롭고 특이한 그림은 그래서 더더욱 멀게만 느껴진다.
나는 우선 그림 그리기에 앞서 세상 사물을 새롭게 보는 방법부터 생각했다. 새롭고 특이 하게 사물을 보고 그것을 회화적 형상으로 드러내자면 아무래도 내 자신부터 거듭나지 않고서는 모든 것이 불가능할 것 같았다. 이유는 우리가 여러 십년에 걸쳐 보고 듣고 어울리고 피돌기하거나 판박이한 사물들을 어떤 재주로 하루아침에 새롭고 특이하게 바꾸어 볼 수 있 단 말인가. 뒤 집은 땅이라야 곡식을 기름지게 가꾸듯 거듭난 눈이 아니고서는 세상을 새롭 게 보고 그릴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떤 특별한 생각이나 장치 없이 내가 그림을 그린다는 것 은 뻔할 뻔자의 헛일이 아닌가. 있는 형태나 곧이 곧대로 그려내고 형상화되지 못한 추상 작업이나 배설행위처럼 되풀이하는 것이 그림 그리기라면 나부터 그림 그리기를 시작하지 않았어야 한다고 작정한 것이다.
나는 신음하듯이 여러 날 여러 달을 머리 싸 매고 고민에 들어갔다. 그 형태에 그 색깔이라 면 그 누군들 새롭다 하겠는가, 이 세상에 쌔 고 쌘 것이 화가들이다. (어떤 이는 우리나라 의 화가 숫자를 약 2백만명 쯤으로 추산했다. ) 이런 터에 내 한몸 그림 판에 자빠진다고 뭐가 그리 대수로울 것인가. 새롭게 보자! 거듭난 사물을 내 자신만의 미감으로 드러내자! 그래, 생각하는 것과 보는 것이 새로와지기 위해서 는 천하없어도 내 자신부터 거듭나야 한다. 그래서 찾아내고 다듬은 좌우명이 "백치의 머리 와 색맹의 눈" 이었다. 이 말이 내 심중에 젖어들 듯이 감잡히자 나는 원효대사가 화임세상을 찾아 무애도를 깨우쳤듯 내 눈앞이 갑자기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하나의 결심앞에 서게 되었다.
- 무엇으로 그릴 것인가
무엇에다 그릴까를 고민한 것은 그 다음이었다. 이제 많은 분이 아시게 되었지만 나는 2000년까지 한지에 수채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다. 이 일을 평론가 윤범모 교수는 종전의 화화적 방법에서는 처음 대하는 일이라고 했다. 수채화가 어디 물먹는 하마같은 한지위의 작업이던가. 그러나 어떻게든 내 자신의 고유성과 나만의 표정을 그림으로 그리고 싶었다. 항시 진리는 가까운데 있다 했다. 생각 끝에 내 주변부터 활용할 것을 궁리했다. 평소 아내 정 경희가 대학에서부터 한국화를 전공한 터로 한지가 집에 쌓여있다. 그리고 미술대 회화과에 다니는 딸아이의 수채화 물감이 여기저기 잠자고 있다. 나는 그것들을 묶어서 "한지에 수채화"라는 절묘한 궁합을 생각해 내곤 나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지금까지 누구도 시도해 본 적이 없는 재료적 접합이라 기분이 좋았고 그것들을 다룰 수 있는 내 자신이 행운아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2001년부터는 그림 재료를 작품적 주제에 맞추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나무 작업을 시작했다. "한라에서 백두까지"를 작품의 주제 로 아우르며 회화적 물줄기를 생명미감으로 표출하는 일은 아무래도 나무(합판목)가 제격 일 것 같았다. 처음에는 이 재료도 낯설기만 하여 내 자신과 호흡을 맞추는데 시간이 걸렸 다. 그러나 나무위의 작업은 생각보다 나를 들 뜨게 했고 이 재료에 맞는 수채, 아크릴, 오일 등을 혼합재료로 하여 재질의 성격에 따라 맞 추어 사용하였다. 나는 나무에 혼합물감으로 작업하여 이번 주제를 생명미감이라는 하나의 정신으로 엮어낼 수 있었다.
- 어떻게 그릴 것인가
어떻게 그릴 것인가. 나는 내 그림의 방법적인 문제로 다시금 고민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의 회화사에는 수 없이 많은 방법들이 물버큼 처럼 일어났다가 명멸해 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19세기 이후부터 우리들의 회화적 안목을 새롭게 열어준 고호나 세잔느, 피카소같은 명장들이 영화속의 스타들처럼 불빛을 타고 내 뇌리를 지나갔다. 그들은 많은 고민 끝에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냈고 그림세상의 혹한을거쳐서 저마다 크나큰 발자취를 남길 수 있었 다. 그렇다면 나또한 이들처럼 그림세상의 혹환을 이겨낼 방법은 무엇일까. 어디 가서 이세상의 갈증을 녹여낼 한 바가지의 물같은 내자신만의 방법을 퍼담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내 회화에 대한 방법적인 문제로 몇번이고 고민했다. 그때 뚫어진 문구멍으로 한줄기 햇빛 이 찾아왔다. 바로 사물마다 생명을 담아내는 '생명미감' 이었다.
무슨 말인가 하실 것이다. 설명은 간단하다. 나는 평소 그림을 생물로 보아왔다. 생물은 생명이 담긴 물체이다. 그래 물체에다 생명을 담기위해서는 생명을 담는 원리를 가져오자. 그림이 살아 숨쉬게 하는 회화적 방법이 필요 하다. 여기에서 생각에 생각을 가다듬어야 했 다. 지금까지의 모든 그림은 평면에 색을 바르 는 방법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세포의 형상 으로 엮어가기로 했다. 그러니까 최초로 세포 의 형상을 엮어서 그린 그림이 세상에 선을 보인 것이다. '바르는 방법에서 엮어가는 방법 으로' 바로 이것이 내 그림에 대한 파천황적 인 개념의 이동이고 이렇게 해서 태어난 '생 명미감'이 내 회화를 만들어가는 원리가 된 것이다.
내 회화의 원리에는 또 하나의 방법이 있다. '햇빛 통과의 원리' 기 그것이다. 햇빛이 공중을 통과할 때 그것들은 갖가지 색채 알갱이로 지나간다.
육안으로 감지하지 못했기에 그렇지 그것들을 우리가 실제의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우리 들의 시선은 그야말로 황홀경에 휩싸일 것이 다. 그 하나의 좋은 예가 무지개 등 프리즘의 현상이 아닌가. 나는 햇빛이 공중을 지나갈 때 의 그 색채적 상태에서 필요한 부분만을 끌어 내어 내 기질과 개성의 차원에서 미감화시키 기로 했다. 그것들은 세포 구성의 원리 못지않는 나름의 독특하면서도 행복한 환상을 내가 연출 하고자 하는 의도대로 표현하였다.
- 무엇을 그릴 것인가
무엇을 그릴 것인가의 자리가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여 내 그림에 등장하는 사물들은 고 유의 형태도 없고 고유의 색채도 없다. 모든 것이 美感의 리듬과 개연성 위에서 저마다의 개성과 기질과 눈빛과 표정으로 춤추고 노래 하면 되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바, 내 그림이 제작된 바탕과 재료, 그리고 방법까지를 나는이 '무엇' 이라는 항목에 수렴하고자 한다.
나는 무엇을 그릴 것인가로 고민하면서 내 자신의 모습을 몇번이고 거울에 비춰 보았다. 내 얼굴의 이목구비 하나하나를 뜯어보면서 새삼스럽게도 짜증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생겼으면 좋았을텐데, 키가 조금만 컸어도, 여기가 조금만 더 높았어도, 아니야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날씬해야 돼, 귀 도 눈도 입도 코도 이대로는 안돼... 화가는 조물주 능력이 미치지 못했던 부족하거나 미 적으로 허술한 부분들을 보충해서 사물 하나 하나를 전체적 조화위에 그려내는 사람이다. 당초 조물주가 손놓친 형상을 화가의 절묘한 미감으로 재현해 놓은 것이 그림이라는 말이다.
그림속의 사물들도 사람처럼 저마다 생각이있고 표정이 있다. 그래 사물들도 사람이 거울 을 쳐다봤을 때처럼 조물주가 손놓친 부분에 대한 불만과 짜증이 있고 그것들을 넘어서서 새롭고 특이하게 변화하려는 욕망이 있다. 바 로 이 사물들의 욕망을 그려내는 일이 화가의 몫이다. 나는 단언코 사물들의 그 욕망의 부분 들을 그려내기 위해 참으로 많은 고민을 하고 반역을 꿈꾼다.
- 내 그림의 소재와 주제들
내 그림의 소재 내지는 주제를 말할 차례이다. 나는 2000년 12월(광주)과 2001년 1월(서 울), 그리고 5월(광주 서구 초대전) 등 3차례 의 작품전을 가졌다. 이 전시회의 작품들은 두 개의 산-금강산. 백두산-과 소나무, 장승, 불상 등 여러 형상을 그린 것들이다. 이들은 여행 뒤의 소산이고 내적으로는 주제화 되어 있지 만 여러 소재를 자유롭게 괼쳐놓은 것들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확인해 둘 것은 (금강산 엔 지금도 선녀가 산다)와 (천지엔 가끔씩 달 이 빠진다)에서는 '선녀'의 이미지를 우리 시 대의 미감으로 형상화 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정서속에 가장 친근한 사물로 피 돌기하고 있는 (소나무)를 68가지 연작의 형 태로 변용시켰다는 것이 부끄럽지만 말하고픈 성과이다. 내 회화행위에 대해 지금도 까놓고 의아해 하는 분들이 있다. 미술대학을 다니지 않았고 특별히 스승 밑에서 배운 일도 없으면 서 더군다나 나이 쉰을 넘기고서야 붓을 잡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물어오는 것이다. 그 러나 이 부분이 내 회화인생에 가장 다행스런 부분이라는 것을 밖히고 싶고 앞으로 계속해 서 낡아버리거나 굳어지지 않은 유연한 머리 와 눈과 손을 감각적으로 소유하는 것만이 나를 계속 좋은 고림으로 꽃피게 하는 일이라 믿는다.
이번에 계획한 작품전의 주제를 밖히려 한다. 이번 작품전의 주제는 한마디로 「한라에 서 백두까지」 이며 그것을 다르게 표현한 것 이「子宮에서서 王冠까지」 이다. 한라산 백록담 부터 우선 그 형상이 우리 민족의 생명력의 원천인 '자궁'의 모양을 하고 있음에 주목하 였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국토미학에서 머리 나 얼굴쯤 되는 곳이 백두산이라면, 天池는 그 위에 씌워진 한없이 아름다운 왕관의 형상이다. 그리고 이들 산맥의 한부분 한부분에 위치하고 있는 지리산은 배꼽, 금강·설악산은 가슴, 묘향산은 어깨나 목쯤에 해당되어 가히 白頭大幹 은 인체에서 완전한 척추이며 그 자체로도 생체적 유기성을 너무도 잘 구비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백두대간 위에 올라가 꿈도 꾸고 노래도 부르고 달리기도 하였다. 白頭大幹 이라는 사무치고 간절한 국토미학을 풋 풋하고 아름다운 생명미감으로 드러내기 위해 아예 白頭大幹 보듬고 입맞추며 한몸이 되 고 싶었다.
- 화가로서의 신념앞에서
나는 지금 화가로서의 창작적 신념앞에 서 있다. 그리고 이같은 신념을 위해 이미 이전에 밝혀놓은 말이 있다. 모든 창작행위는 강물 하나쯤 만들어서 바다로 흘러가는 일이 라 생각한다. 그 강물은 무심히 바다로 흘러가 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개의 굽이를 만들면서 흘러가는데 나는 그 굽이마다 변화도 만들고 감동도 만들고 아름다움도 만들면서 흘러갈 것이다. 분명 어제의 강물은 오늘의 강물이 아 니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강물 또한 내일의 강 물이 될 수 없다. 정말이지 작품전을 펼칠 때 마다 또다른 눈빛과 표정을 가진 기질있는 그 림들로 오래오래 여러 애호가 앞에 서고 싶 다. " 그것을 위해 틈만 나면 우리 민족의 척추 로 서 있는 백두대간의 여러 산들을 흡사 탐 닉하듯 찾아 나서고 있다.
지난해 8월과 9월에도 실크로드를 포함한두 차례의 중국여행을 단행했고 금년에도 서너 차례는 바깥 나라를 나들이 할 것같다. 세 상이 시끄럽고 사람들이 사악할수록 그림에 다가가는 시간이 많아진다 그래서 이미 (山이 된 사람들), (天池가 王冠이다), (완전한 자궁, 백록담), (천지의 하늘, 色層으로 내려온다), ( 山은 물을 안고 물은 산을 기르고), (키 자라는 山들), (바다에 빠진 설악산), (지리산의 푸른 허리), (바다에서 자라난 금강산), (묘향산의 금빛 가을)등을 비롯한 여러 작품들을 기도하듯 간절하고 간절하고 또 간절한 정신과 미감으로 뽑아내고 있다. 백치 만세, 색맹 만 세 ! 오오 쿠어바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