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경상북도 경주이다. 2002년 월드컵이 열리던 해 봄,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인 경주대학교 예술학부에 전임강사로 부임하였다. 일본 도쿄에서 6년간의 유학생활 후 귀국하여 1년간 강사생활을 하다가 경주에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나는 경주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건천에서 매일 학교로 출퇴근하고 있다. 아침 저녁으로 다가오는 계절의 풍경들은 오늘날에도 신라시대의 공기를느끼게 해준다. 옛 신라의 화랑들도 나와 같은 공기를 마시며 이풍경 속에서 호연지기를 다졌으리라. 나는 부임직후부터 지금까지 '한국이미지연구'라는 과목을 개설하여 강의해 왔다. 이 시간에 나는 학생들과 함께 경주의 문화 유적을 찾아 다니면서 스케치하고, 사진찍고, 놀고...... 고민했다. 이제 나는 점점 경주사람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신토불이라고 했던가. 요즘에는 서울 사람은 서울그림을 그리고, 경주사람은 경주그림을 그리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 살아 숨쉬고 있는 신라의 숨결을 화폭에 담기로 했다. 내가 살고 있는경주에서 영감을 받고, 경주를 모티브로 작품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의 생활과 나를 둘러싼 환경에 충실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내가 사는 경주의 남산은 옛신라인들에게 불국정토로 불리었으며, 사실상 실크로드의 종착지였다. 경주 남산의 불상들에서 중국 돈황의 석불양식과 비슷한 점을 찾아 볼 수 있지만, 또한 돈황과는 다른 신라인의 미의식을 발견하게 된다. 경주 남산의 불상에서 우리는 인도나 중국인이 아닌 신라인의 얼굴을 찾아볼 수 있다. 경주 남산의 석불들은 부드럽고, 천진하고, 인자하며 지혜로워 보인다. 나는 경주 남산의 석불들을 보면서 석가모니를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그 불상을 그리면서 신라인의 모습을 떠 올렸다. 그리고 그 후손인 살아 있는우리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불국정토의 주인공들은 바로 남산의 석불들에서 보는 그런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얼굴은 신라인의 얼굴이자 그 후손인 우리들의 얼굴인 것이다. 오늘도 나는 경주남산의 석불들에서 우리들의 모습을 찾으며 스케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