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렬(1966년생)은 70~80년대 당시 한국 현대미술운동의 메카로 명성을 떨쳤던 대구 현대미술의 분위기와 특성을 물려받아 1998년부터 대구현대미술가협회(TCAA)를 중심으로 한 실험적인 추상미술 작업으로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습니다.
1993년 미술대학 졸업 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정서적 불안함을 검정 모노톤의 목탄작업 <forest-숲> 시리즈에 담아냈습니다. 이 작품들 속에 나타난 숲의 연약한 묘목 같은 터치의 짧은 선들은 성장의 불투명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을 뿐인 허망한 것들의 상징으로 보여 집니다.
2000년부터 시작된 <icicle-고드름> 시리즈에서는 지루하리만치 긴 시간 속에서 철사, 옷걸이, 주전자, 바스켓 등의 대상을 백색 안료에 담갔다가 건져내고 말린 후 다시 담그는 반복적인 행위로 얻어낸 각각의 대상에 매달린 백색의 연성 고드름 형태에 대해 작가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습니다.
---마치 생물이 자라는 모습과 같이 무생물이 생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고드름 형상은 그 자체가 생명력과 정신세계가 상실된 물질이 자라는 모습과 같다. 과도한 물질문명의 발전으로 인해 자연은 물론 인간의 육체와 정신이 동시에 피폐화되어가고, 나는 이런 현실 속에서 조금씩 느리게 자라는 고드름처럼 가끔은 느리게, 여유 있게 지난시간을 되돌아보며 현재의 모습을 다시 생각해 보고자 한다.
2005년 Gallery Fo 개인전에서 선보인 <wave-물결> 시리즈는 이전의 <고드름> 시리즈의 연장선에서 발전된 작업들입니다. 작가는 의도한 방향과 속도를 작정 하고 기울기를 설정한 MDF 패널위에 묽은 연녹색의 안료+바인더(접착액)를 칠하기/경사 준 각도대로 뒤집기/흘러내리기/굳고-마르기/다시 반복의 방법으로 수면(水面)또는 하늘같은 비정형 여울 같은 감각적인 화면을 얻어냈습니다. 이 작업은 빠른 속도로 변화를 구하는 현대사회에 반(反)해서 소박한 믿음과 시간의 축적과 경과를 드러내는 느림이 강조된 아날로그적 감성의 작업으로 말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코발트 블루톤으로 심연(深淵)을 연상시키는 <wave> 시리즈를 통해 이전의 작업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누적된 시간과 확장되는 관념적인 공간의 개념을 가시화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시간과 공간 개념에 새롭게 접근하는 드로잉과 벽면 설치작품, 장소적 특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장소 특정적(Site-Specific) 설치작품 등 최근작 20여점이 소개됩니다. 각각의 완성된 패널작품을 L자, T자로 연결시키기도 하고 돌(자연석)과 MDF 작품을 바닥에 설치하는 등 작품과 작품, 작품과 공간과의 관계를 새롭게 경험하는 작업을 통해 한층 변화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감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