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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시 |
배명수 展 -그대로 또는 되돌아갈 것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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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시 |
2003.04.11.금~2003.05.01.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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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그 위대한 범례
왜 그토록 많은 예술가들이 자연에 천착하는가?
왜 그들은 삶을 통해 자연율을 실현하려 하는가? 그들이 자연, 자연성을 통해 만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고백하건대 필자까지 포함하여, 예술가들은 태생적으로 자연생태학적인 영성을 지닌 사람들이란 점을 얘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들 성정의 원천은 土性, 水性, 木星에서 비롯된 정태적 식물성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예술생리학(?)상 그들은 담즙질(膽汁質)일 수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신화에 대한 기억을 잃지 않으면서 자신의 원형에 대한 귀거래사를 읊조리는 작업을 일생 지속하는 사람들입니다. 녹색문학, 녹색정치를 얘기하진 않더라도 이제 자연, 자연율에게 천착하는 작가들은 21세기의 거대한 화두로 떠오르는 에콜로지를 실천해 나가는 예술생태학의 운동가들인 것입니다. 예술은 곧 자연, 생명존중, 환경, 문화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연(작품)을 통해 황황한 그 무엇을 만나기 위해, 그리하여 見者로서 제대로 "볼줄"아는 삶다운 삶을 열어가고자 고뇌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무엇이란 바로 자연율에 다름 아닙니다. 그러나 "본다"는 것은 "안다"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는 명제는 진리일 뿐이지, 진리의 실천적 명제는 아닙니다. 따라서 "산은 푸르고 물은 흘러간다."로 바뀌어야 합니다.
하루하루의 일상에서도 "볼 수" 있는 사람은 늘 봅니다. 그렇게 자연, 자연율을 체감할 수 있다는 것은 그가 비록 이 땅에 두 발을 디딘 사람의 존재이지만 그는 이미 자연율로 존재하기 때문에 주변과 또한 자연율로서의 네트워크를 확장시킬 수 있는 팩터(factor)가 됩니다.
화가가 오랫동안 무작정 붓을 놓고 자신을 방기한 채 시간을 잊고 사는 것처럼 보일 때 그는 저 산의 바위나 나무처럼 무심하게 있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그 안에 치열함을 가둬 놓고 그것을 정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니 사실 그렇습니다. 무엇을 그려야(표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야말로 자연율에 위배되는 것이겠지요. 배명수 선배 또한 간혹 그림 밖에서 오래 서성일 때가 있습니다. 그가 불현듯 조구(釣具)를 챙겨 남해의 갈대숲으로 숨어드는 것은, 일종의 자신의 유배를 스스로 결행하는 것이면서 한편으로는 자신과의 거리두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불시에 이런 행려는 일상에서 자연과 자연율로부터 배리된 삶의 간극에 대한 자기보속 그 부근 아닐런지요. 자연이 무엇인가? 라는 우문에 대한 일각의 답을 "제 스스로 생멸 순환하는 본연의 법칙으로서의 만물의 성질, 본성, 본질"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서구적인 인식론적 방법의 협의가 짙게 풍기는 정의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자연을 타자화함으로써 인간과 자연의 관계항을 만들어 불필요한 부등호를 첨가하는 지적 사족에 불과한 일입니다. 자연은 언어화될 수 없지요. 자연은 비합리적인 논리를 지닙니다. 그러나 자연의 논리에는 무서운 일관성이 있습니다. 그 일관성을 우리의 이성이 따라잡기에는 너무 협량할 따름입니다.
진정한 자연은 인식의 대상으로서가 아닌 인간 스스로 자연과의 사트상(satsang : 내밀한 관계로 완전히 융합된)을 이를 때 뿐이며 그것은 인간이 본래 흙과 물로부터 유래된 제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예술행위의 근거이면서, 우주의 한 부분으로 동참해서 자신을 확장해 나가는 삶의 오르가즘입니다. 인간이 단지 인간으로 분절될 때 (개념화될 때) "저 산"과 "하늘"은 차안이 되겠지만 자의식과 언어가 소멸하는 궁극에 가서는 피안과 차안의 구별도 무의미해지고, "나"가 "저 산"이 되고 "저 하늘"이 되겠지요. 그러나 자연을 의식하는 순가 비자연이 생겨납니다. 또한 우리가 비자연적일 때 자연에 대한 의문이 생겨납니다. 마치 부패한 사람일수록 정의를 의식하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모든 차별은 동시에 같은 문으로 들어옵니다. 자의식은 병입니다. 사실 자의식이 없게 되는 것이 곧 깨달음이라지요. 모든 합일됨에 있어서 언어와 자의식은 방해가 됩니다. 본래 자기가 없는 것, 모든 양분법, 모든 종교적, 윤리적 선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작가는 그 상태에서 붓을 휘두르고 그 상태에서 정지해야 하겠지요. 돈오점수(頓悟漸修)가 됐든 선오후수(先俉後修)가 됐든 그 수련과 깨우침의 순서야 그다지 문제될 게 없잖습니까? 삶이 자연 그대로의 眞知한 법이 실행되는 장이라면, 사람의 본성 또한 그 자연율과 같다면, 모든 것들이 우주만물의 법칙에서 크게 일탈되어 있지는 않겠지요. 의당 그래야 되겠지만 참으로 세상이 어수선한 걸 보면, 모두 너무 자연율로부터 많이 비껴나가 있다는 반증 아니겠습니까.
저문 수로에서 혹은 새벽안개 자욱한 호숫가에 앉아서 선배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돈어(頓悟)를 앞 둔 점수(漸修) 혹은 후수(後修)의 잔잔함 한가운데였을까요? 며칠씩 떠났다가 돌아올 때 그가 배낭에 가지고 온 것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수로에서 건쳐 올린 월척이 단연코 아니었을 겁니다. 아마도 성긴 그물망으로 빠져나가 버려 아무 무게도 없는 망각 한 줌이 아닐런지요. 아니 망각조차도 가지고 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죽인 노시인의 절창처럼 그가 가지고 온 것은 팔할이 바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선배가 그 바람조차 버리고 올 때 그는 진정한 자연의 일부로서 어느 강가에서 밤새워 서슬 퍼렇게, 정말 퍼렇게 서걱일 수 있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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