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음을 맞이하며 눈을 뜬 순간 “오늘 하루도 힘차게…”를 외치며 삶의 쳇바퀴는 또 다시 돌아간다. 성공이라는 지상과제를 성취하려는 현대인들은 매캐한 매연으로 가득 찬 도시 빌딩 숲에서 분주히 움직인다. 언젠가는 이 빌딩 숲의 높은 자리에서 세상을 내려다 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온전히 자신을 혹사하고 나면 긴 한숨과 함께 어둠이 내려앉는다. 분주하고 어수선하던 회색 빛 도시는 어둠과 더불어 반짝이기 시작하는 수많은 불빛의 향연 속으로 사라진다. 피곤에 찌든 우리네 몸은 사각형 보금자리로 돌아가거나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속에서 향락을 즐기며 진정한 하루를 시작한다. 우리의 일상이 시작되는 것이다.
송성진의 이번 작업은 한 마디로 <야심만만>이다. 야심만만(野心滿滿)하게도 그는 블랙 라이트에 발광하는 도시 풍경을 통해 삭막한 도시에서의 우리네 삶을 뒤돌아보게 하고 우리의 고향이기도 한 도시의 야경을 예쁘장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 공간을 구축한다. 한 술 더 떠 그는 진정한 일상이랄 수 있는 밤의 일상을 보기 위해 삶의 공간으로 침투하여 야심만만(夜心萬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낸다. 덕분에 관람객들은 몇 번의 클릭만으로 타인의 생활공간을 가볍게 훔쳐보는 유희를 만끽할 수 있다.
전시장에서 처음 만나는 도시 풍경은 수많은 사각형 건물들을 구축하여 만든 탑이다. 블랙라이트와 아래 위에 설치된 조명에 의해 이 구축물은 얼핏 센텀파크와 같은 고층빌딩의 야경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얼기설기 쌓인 탑의 위태로움은 도시 건축물의 불안함을 은근히 드러낸다. 탑을 지나 주 전시장을 들어가기 직전에 관람객들은 요란하면서도 예쁘장한 장식물을 보게 된다. 좁은 복도의 양 면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는 간판들이 그것이다. 도시 야경의 첨병인 네온사인은 화려함을 뽐내지만 그것은 도시의 슬픈 향락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네온사인은 엄연한 우리의 현실! 쉽게 배척할 수 있는 타자가 아닌 분명 나의 모습이다. (네온사인뿐 아니라 본 전시 공간 모두가 예쁘장하게 보이는 이유는 이와 같은 작가의 진지한 자기성찰이 반영된 결과라고 평한다는 과도한 칭찬일까!) 아래에 있는 물에 비친 간판들의 발광은 재현된 간판이 가지고 있는 시끄러움을 잠재우면서 흐릿한 미적 쾌를 유발한다. 작가는 간판의 재현의 재현인 이 발광이 실재 간판에서는 느낄 수 없는 미적 쾌를 유발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만약 시각예술을 실재의 재현의 재현물이라고 경계하고 폄하한 플라톤이 이 전시를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주 전시장에 들어서면 두 작품을 대면하게 된다. 하나는 2002년부터 시도한 블랙라이트에 발광하는 도시 이미지이며 다른 하나는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선보이는 플래쉬를 이용한 ‘일상 투시’하기이다. 발광하는 도시 이미지는 문자 그대로 참 예쁘장하다. 이 이미지는 부산이면서도 왠지 부산 같지 않은 센텀 시티의 여러 풍경들과 용호농장을 합성한 것이다. 왼쪽 후경으로는 사각형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으며 전경에는 공사장과 공원이 자리 잡고 있다. 오른쪽 전경은 현재 작가의 가족이 살고 있는 건물 이미지이며 후경은 작가의 유년시절의 기억이 온전히 남아 ! 있는 용호농장의 이미지로 채워져 있다. 낮의 풍경은 어느 것 하나 예외 없이 무채색 계열로 드러나 도시의 삭막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서서히 블랙라이트가 켜지면서 밤이 되면 도시는 그 삭막함을 어둠에 감춰버리고 총총한 빛들을 발산한다. 관람객들은 동일한 대상에서 두 가지 이미지를 경험하게 된다. 작가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 도시의 삭막함과 더불어 삶의 터전으로서의 도시를 동시에 관람객들이 보길 희망한다. 이런 희망은 전체 이미지 중 용호 농장을 조용하고 은근한 불빛으로 채색한 그의 태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
프린터 된 기본 배경에 루미라이트와 형광 안료를 사용하여 채색한 그의 도시 이미지는 사실 블랙라이트 없이도 미적 효과를 충분히 발휘한다. 물론 여기에 블랙라이트의 빛이 반사되면 보는 바와 같이 환상적인 미적 효과가 드러난다. 도시 이미지에 대한 비판적 선지식이 없다면 보이는 이미지는 사실 예쁘장하게만 느껴질 수도 있다. 이것은 도시 풍경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 때문이다. 작가의 시선은 대상과 관조적 자세를 취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관조적 시선은 도시에 대한 비판적 읽기를 무력화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문제를 작가 역시 알고 있었을까! 그는 새로운 시도를 한다. 주 전시장 한 쪽 면에는 고층 아파트 이미지가 위압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고층 아파트는 어둠에 둘러싸여 있지만 스스로 빛을 내며 존재를 드러낸다. 위압적인 고층 아파트의 모습에 주눅이 들어 고개를 돌리려 하는 순간 익숙한 무언가가 눈에 띈다. 마우스 포인터! 조심스레 마우스를 움직여 창문을 클릭을 해본다. 그 때 저 너머에 감춰져 있던 사람들의 일상이 화면에 나타난다. 아파트 가장자리의 창문들은 모두 클릭이 가능하다. 그리고 한 번의! 클릭은 한 가정의 일상사를 보여준다. 이제 시선은 저 멀리 허공에 떠 있지 않고 아파트 베란다를 관통하여 실내로 들어간다. 작가는 도시의 바쁜 삶에 의해 자신의 일상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관람객에게 일상을 환기시킬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다. 일상의 환기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함과 동시에 예쁘장하게만 보이던 도시 풍경을 새롭게 볼 기회를 제공한다.
<A daily Event>라는 타이틀을 건 이번 전시를 통해 송성진 작가는 기존의 작업에서 보여주었던 관조적 태도를 벗어나 보다 적극적이고 밀착된 시선을 가지려는 의지를 표명했다. 그런데 밀착된 시선이 포착한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미지들이다. 익숙함 자체가 비판의 대상이 될 수는 없지만 익숙함은 새로움의 드러냄을 차단할 수 있기에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분명 이 전시는 우리로 하여금 일상을 되돌아보게 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필자는 이제 단순히 되돌아보는 계기로서가 아닌 새로운 것을 보이게끔 하는 계기로서의 작업을 그에게 기대해본다.
작가노트
늘어져있는 눈꺼풀이 밀려 올라 갈 시간쯤이면 가장 친숙한 것들이 흐...
늘어져있는 눈꺼풀이 밀려 올라 갈 시간쯤이면 가장 친숙한 것들이 흐릿하게 동공을 가득 채운다. 지친 몸이 이불 속을 헤집고 기어 나와 매일 같은 시간에 세면과 준비를 하며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집을 나선다. 매일 보던 건물과 간판, 매번 같은 길을 지나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곳을 향해서 간다. 매번 그곳에서 서 있는 날 그렇게 비난하면서도 오늘도 어김없이 그곳을 향해 간다.
내가 사는 곳은 큰 사각기둥 안에 작은 사각박스이다. 큰 사각기둥은 많은 사각유리창을 가지고 있는데 그 유리창들 중 하나가 내가 사는 곳이다. 그 유리창안에서는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매일 반복적인 일들, 어떤 이는 한 번도 겪지 못한 일들 그리고 은밀하고 비밀스럽게 일어나는 일들, 또한 생과 사의 일들이 그 속에서 벌어진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과 환경보다 다른 사람의 삶에 많은 호기심을 가진다. 그것이 자신의 삶의 지표가 되기도 하고 삶에 대한 반성과 희망의 메시지가 되도록 하는 긍정적인 것이 되기도 하며 시기, 질투, 분노 등의 부정적인 반응으로 표출되어 사회의 이슈가 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은 사람이 기본적으로 가지는 호기심과 행복하고자 하는 욕심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들여다보는 이 사각 프레임 속의 이미지들은 어쩌면 자기일상의 단편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매일이라는 날과 시간 그리고 자신과 함께하는 모든 것들, 여태껏 맞붙어 있어 소중한 것임을! 인식함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잡히지 않는 이상을 좇으려 현실에 대한 만족과 고마움을 외면한 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주위를 둘러싼 일상의 모습은 관람자의 가치기준에 따라 많이 달라 보일 것이다. 그 기준의 제시는 이 A daliy event 에서는 없다. 그것은 철저히 관람자의 몫이며 판단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