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역량과 시민의 잠재력이 봄꽃처럼 활짝 피어오르는 5월의 대구는 전시의 열기로 뜨겁습니다. 선선한 공기와 함께 전시장을 둘러봄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5월에 저희 두산아트센터에서는 최고의 꼭지점 미술이라 할 수 있는
‘APEX ART’ 이석조를 초대하여 전시를 개최합니다.
문학사상 표지그림도 그리고 만다라 그림 시리즈로 화단에 이름을 알린바 있는 그는 “캔버스를 엎어버리고 화선지를 일으켜 세우다”의 타이틀에 걸맞게 “반란 그리고 이탈” 그리하여 재료와 공간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함께 그 날 것의 재료에 이미지를 확산시킨다.
그림틀(와꾸)에서 이탈하여 캔버스천, 화선지의 재료에 간단한 방법으로 찢거나 잘라 평면에서 입체로 입체에서 평면으로 연결되는 완벽한 새로운 조형의 장을 탄생시킨다. 각종 물감이나 오브제 사용 등으로 도포되어왔던 관습적인 행위에서 반란과 이탈을 꿈꾼 그는 드디어 두산아트센터에서 재료의 원형질에 아무런 물질도 가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해석과 조형으로 50×70cm ~ 100×150cm등의 작품크기로 30여점을 손 보인다.
작가노트
나는 화폭 위의 영원한 반란자를 꿈꾼다. 캔버스와 한지 위에 더 이상...
나는 화폭 위의 영원한 반란자를 꿈꾼다. 캔버스와 한지 위에 더 이상 물감이나 오브제로 도포하는 일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동안 무수한 천재들이 삭신이 일그러지도록 목을 매고 화폭에서 비장한 전투를 벌이지 않았던가. 나의 지난 세월도 뭔가 그려 내겠다고 덩달아 붓과 씨름한 시간들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나무에 새기고 석고도 떴다. 사람들은 화가라고도 했고 조각가라고도 했지만, 나에겐 그저 무심한 행위였을 뿐이다. 60을 넘긴 나 이석조(61)는 이제야 놀 거리를 찾았다. 캔버스와 한지(화선지)에 대한 관습적인 행위를 버리니 자유를 얻었다. 뒤집은 캔버스 천과 한지로 종이놀이 하듯 자르고 접으니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욕사무지(欲死無地: 죽고자 하나 죽을 땅이 없음)한 마음으로 딴죽을 걸어 보는 것이다. 확 뒤집어버리면 모든 것이 돌아버릴 것이다. 정확하게 돌지 않으면 설 곳이 없다. 세계적으로 찬란하게 회전한 이들이 많으니 나는 200% 돌아야 산다. 갑자기 몸이 달아 오르고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온다. “다 쓸어 버려라! 보이는 게 있을 거야.” 나는 재료의 원형질에 될 수 있으면 아무런 물질도 가하지 않기로 했다. 방법은 간단하다. 캔버스를 엎어버리고 화선지를 일으켜세우면 된다. 찢거나 잘라서 암수의 원리로 엮어주면 된다. 평면에서 입체로, 입체에서 평면으로 연결되는 새로운 조형의 장이 열린다. 회화도 아닌 것이 조각도 아닌 것이, 한 방에 기존의 회화나 조각의 한계성을 날려버린다. 캔버스와 화선지가 더 이상 색채의 받침대가 아니라 물질 자체의 순수 조형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토록 아우성치던 온갖 이즘과 형식들이 소거된 말끔한 공간이 아닌가.
나는 이 시점에서 숨이 막힐 듯이 현란한 미술사의 숲을 헤치고 나와 환상의 에너지를 내뿜는, 어쩌면 평면 예술의 마지막 이상향이 될지도 모르는 드림랜드를 발견한 것이다. 가장 원초적인 발상에서 수백 수천년 전래하는 동서양의 미술적 이념들을 융합시킨 무한대의 놀이터를 확보한 셈이다. 평면에서 더 갈 데 없는 꼭짓점 미술(Apex Art)이라 칭하고 싶다.
20대 방황의 긴 터널 끝에 들어간 절에서 어느 날 문득 손 가는 대로 그려낸 드로잉이 나를 화가라는 이름에 연을 맺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림이라기보다 나의 내면과의 대화였다. 또 주변과의 소통의 방식이기도 했다. 절에서 책을 읽고 불을 지펴주는 처사였던 나를 화가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떠민 이는 극작가였던 형님이었다. 영화를 만들고 싶어 고교 시절부터 ‘시나리오 작법’이란 책을 술술 외웠던 나에게 형님은 내가 그린 만다라 그림을 보고는 괜찮다며 화가의 길을 권했다. 일본 미술잡지 ‘미술수첩’ 등을 보내주며 격려했다. 문학사상 표지그림도 그리고 만다라 그림 시리즈로 화단에 이름을 알렸다. 절에 있을 때 알게 된 미국인 아내 아이린(57)의 민감한 색채감각도 큰 힘이 됐다. 용산 미국인학교 음악 선생인 아내는 내가 유럽으로 미술공부를 떠나자 근무지를 독일로 옮겨 함께 해주었다.
독일미술아카데미에 입학하려고 지원서를 냈더니 담당 교수는 더 이상 자신에게 배울 게 없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오히려 내 멋대로 그림을 그려보라고 조언했다. 3년간 유럽 구석구석을 방랑하며 유명 뮤지엄보다는 민속과 원시 미술에서 예술의 원형을 보았다. 원초적 미에 다시 회귀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몸을 추스르려 몽골에서 말을 타며 보낸 1년도 그림을 그린다는 일을 다시 생각케 만들었다. 드넓은 초원 위의 말발굽 흔적이 붓질처럼 다가 왔다. 이제까지 삼라만상이 놀아나는 양상을 그렸다면, 이제부턴 초원 위의 말처럼 내가 놀아나는 양상을 종이놀이 하듯 펼쳐낼 것이다. 오는 5월 고향인 대구 두산아트센터에서 갖는 개인전은 그 일단을 보여주는 자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