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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작품이미지는
전시공간에서 홍보를 위해
e-mail로 보낸 사진을 재가공하여 등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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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시 |
보호받고 고립되다. (Protect and Isola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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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시 |
2006.12.05.화~2006.12.15.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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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 없는 구원 <보호받고 고립되다>
풍문은 2천 년 전부터 있어 왔다. 풍문의 내용은 그저 그런 메시지를 담고 있었지만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다. 부활에 대한 메시지인지 구원에 대한 메시지인지 종종 착오를 불러 오기는 했음에도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었다. 문제는 세계가 구원될 것이라는 ‘말씀’을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여전히 풍문이 실현될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그 사이에 풍문을 믿고 따르는 숱한 어린 양들은 풍문의 진원지에 기도하고 예배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풍문 그 자체가 어린 양들을 보호해주었고 그들의 묵은 죄를 사해 주었다. 풍문은 거대하게 부풀어 올라 어린 양들은 그 속에서 무한한 행복을 누렸다. 십자가의 속에서만.
그러나 점차 풍문의 실체는 사라지고 오직 ‘죄’와 ‘구원’에만 매달려 양떼가 풀을 뜯는 것처럼 묵묵히 죄와 구원만을 먹어치우는 형국이 되어 버렸다. 죄는 기하급수적으로 급증하기만 하고 구원은 너무 높은 턱을 넘지 않고서는 도달할 수 없게 되었다. ‘말씀’ 대신에 ‘아이콘’은 막강한 위력으로 어린 양들을 나포하여 ‘말씀’이 미처 말하지 않았던 지옥을 매번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 아이콘들은 ‘보라, 이 처참한 현실을 구원해 줄 것은 자본의 딱지가 붙은 것들이야’라고 거짓된 ‘말씀’으로 어린 양을 참혹한 노동 현실로 내몰기 일쑤였다. 거기에 저항한 몇몇이 있었으나 그들은 불타 죽거나 쉽게 망각되고 말았다. 자본주의적 현실은 ‘말씀’이 통하지 않는 막막한 세계로 돌변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세계의 모순을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말씀’은 말 그대로 단지 ‘풍문’이었던 것일까? 혹 세계에 저항하는 것도 무용지물인 건 아닐까? 이 세계는 그저 막힌 회로에 불과한 것일까? 정도윤의 작업은 물음들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로 가득 차 있다. 정도윤은 먼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두지 않고 육면체로 파악한다. 육면체가 개방될 때, 그것은 ‘십자가’의 형상을 하게 되며 그것을 통해 세계의 문제 자체를 형상화한다. 물론 개방된 십자가는 동시에 폐쇄된다는 점을 눈치채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작가는 시스템의 두 양상, 즉 입구와 출구를 제시하고 그것이 구원이 될 것인지 도리어 지옥행인지를 판단할 것을 제안한다. 이런 점에서 정도윤이 제시하는 십자가 이미지는 기독교적 ‘상징’으로 주어진 게 아니라 알레고리로 파악하게 만든다.
알다시피, 알레고리란 사물이 원래 위치한 맥락에서 이탈시키는 예술적 방법이다. 부연하자면, 사물이 그것이 원래 위치한 맥락에서 벗어날 때, 사물은 ‘현재’라는 시간과 연관되며 그 사물은 현재의 시간으로 (재)맥락화된다. 다시 말해 정도윤에게 십자가 형상은 기독교적 상징물이 아니라 ‘현재’의 세계를 읽는 방법으로 주어져 있는 셈이다. 하지만 십자가 형상을 곧바로 제시하기보다 정도윤은 먼저 육면체를 세계 이해의 발판으로 내어 놓는다. <열림과 닫힘 그리고 세상>이 그것인데, 세계로 들어가는 다양한 ‘입구’들로 육면체를 형상화하고 그 육면체의 바탕에 ‘지도’를 배치한다. 이는 현실이 입체 그리드로 조직되어 있음을 떠올리게 하는 효과를 지닌다.
따라서 정도윤에게 ‘세계’란 근원적으로 육면체, 더 정확히 말해 입체 그리드에 의해 장악하고 있으며 그것이 존재자들에게 주어진 ‘상황’이다. 그의 어법을 직접 빌면 그리드의 현실 속에 우연히 던져져서 설치된 선물 꾸러미이거나(<위험한 선물>) 그리드의 틀에서만 겨우 꿈을 꿀 자격이 주어지는 나무 혹은 자연에 불과하다(<꿈꾸는 숲>). 그러므로 정도윤에게 입체 그리드는 존재자를 구속하는 철창으로 표현된다. 모든 사물과 자연은 자본주의적 현실의 구속 아래에서만 존재할 수 있고 그것을 벗어나면 존재하기를 그친다는 섬뜩한 회의와 마주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에서이다. 정도윤이 형상과 의미의 불일치를 지속하는 알레고리를 써야만 했던 것도 이 때문인 셈이다.
다른 방식으로 말하자면, 정도윤에게 세계는 총체적이기보다 파편적이며 아름답기보다 이성이 늘 한계에 도달하는 숭고한 것으로 나타난다. 하여, 입체 그리드를 평면화하는 작업이 필요했던 것도 이러한 태도에 도달했기 때문에 가능한 발상이다. 현실에서 어떠한 사물도 그저 존재할 수는 없고 현실을 가능하게 하는 원리와 힘에 의해 새롭게 조직되어야만 현실의 맥락에 안착할 수 있게 된다면 입체 그리드를 해체하면 어떻게 될까라고 질문하는 게 필요하다는 말이다. 물론 여기에 정답이 있거나 명백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나름대로 이해 가능한 방법으로 풀려고 했다는 데에 있다. 그것을 벗어나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그것을 벗어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곧 현실을 구성하는 원리를 해체해 봄으로써 생겨날 문제들과 대면하는 것이므로.
그런데 정도윤은 입체 그리드를 해체했음에도 그리드로 조직된 십자가 형상은 사라지지 않는 기이한 장면들이 작업에 지속된다. 마치 포드주의에서 포스트 포드주의로 자본의 축적방식만 변경되었을 뿐 여전히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을 지시하는 것처럼 입체 그리드를 해체해도 그리드는 사라지지 않고 십자가 형상으로 남아 현실세계를 지배하고 장악할 것이라는 잠언이 담겨 있는 듯하다. 정도윤의 그리드가 자본주의적 상황이라는 절체절명의 국면과 그리드로 표상되는 회화적 조건 둘 모두 상기하게 만드는 것도 전혀 뜬금없는 일은 그래서 전혀 아니다. 지구가 다국적 기업에 의해 장악되면서 지구를 뒤덮은 것은 네트워크들이 아니라 상품 아이콘이라는 것을 지적한 <또 다른 나라> 작업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 때문에 정도윤에게 십자가 형상은 세계를 구원하는 역할을 맡지 않으며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삶으로 순환되는 과정을 적확하게 지시할 뿐이다. 구원의 ‘말씀’은 ‘죽음’으로 내모는 ‘명령’으로 탈바꿈한다는 것. 대도시 건물 위에 장엄하게 펼쳐져 있는 십자가 형상(<보호받는 도시>) 혹은 구름―십자가 형상(<옆 동네>)이 억압적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것처럼 배치한 것도 이런 점에서 비롯되었을 터. 그래서 정도윤에게 십자가 형상은 삶의 가능성으로 주어진 것이면서 동시에 삶을 좀먹는 것이기도 하다. 즉, 십자가 형상이 불에 타 안으로 함몰되거나(<In Fire>) 물이 밖으로 넘쳐나는 것(<Out water>)으로 표현한 데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현실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사실 모든 불가능한 조건들과 함께 존재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리드를 허용할 때 생존을 할 수 있지만 그것은 동시에 존재를 왜곡시키고 파괴시킨다는 것을 암시한다. 마치 프랑스의 맑스주의자 루이 알튀세가 제기했던 이데올로기의 문제처럼, 과잉될 때 흘러넘칠 것이고 과소될 때 불에 타 스러지면서 세계에 거주하는 개체들을 결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때 세계에 거주하는 모든 각각의 개체들은 십자가 형상 내부로 포섭될 것이며 그리드 시스템을 이탈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세계는 종말에 다다르게 된다? 우선은 최소한의, 결정되지 않은 결론에만 도달하자. 요컨대, 이런 명제가 가능할 것이다. 자본은 예술을 ‘가능’하게 만들면서도 또한 ‘불가능’하게도 만든다. 역으로 예술은 자본을 ‘기능’하게 하지만 동시에 ‘중지’시킨다.
그렇다고 해서 정도윤은 세계가 파국에 다다를 것이라고 상상하지는 않는다. 정작 중요한 것은 드로잉에 드러나 있는데, 육면체와 그리드 표면에서 아우성치며 활발한 움직임을 펼치는 무수한 익명의 존재들에게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드와 자본이 용납할 수 없었던, 주체로 온전히 대접받을 수 없는 비주체적 요소들 말이다. 또는 표상적 질서로 사유될 없는 존재의 무한함. 다시 말해 자본―그리드 내부에 있으면서 내부일 수 없는 그러한 힘들, 역량들 말이다. 정도윤은 그러한 정체를 가진 게 무엇인지 아직 정확하게 포착하지 않는다. 어쩌면 정확히 포착한다는 말 자체가 그릇되었을 터이지만, 다만 ‘그것’이라고만 부를 수 있는 것이 자본―그리드를 헤치며 나오는 운동을 표현하려 한다.
그런데, 주 전시 작업이 사진임에도 ‘그것’이 사진작업에서가 아니라 드로잉에서 유독 이 힘들이 분출되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형상화의 과정이 사진 작업에서처럼 말끔한 형식으로 제시될 수 없는, 사진에서 나타난 형상보다 더 일그러지고 기괴하기 때문일까? 사진에서 보이는 ‘낯 섬’과 ‘기괴함’보다 더 강력한 ‘낯 섬’과 ‘기괴함’을 ‘그것’들이 요구하는 있다고 보아야 할까? ‘그것’들은 그리드 내부에 안착할 수 없는 형식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가 첫 개인전에 쓴 세 매체 드로잉, 사진, 영상이라는 세 형식이 ‘그것’들을 표현하는 데에 무리가 있었던 것일까? 안과 바깥을 동시에 드러내고자 하는 작가의 욕망을 그 세 매체가 충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그가 ‘자아’의 정체성을 가능하게 하면서도 동시에 불가능에 자꾸만 빠뜨리는 근원적 힘, 타자를 이제 만나지 않을까 기대한다는 말은 남겨두자. 아니, 폐허 위에서 뒤를 돌아보며 현재와, 아니 현실과 대화해야 할까? 내면 풍경을 자꾸만 찢고 들어오려는 타자 혹은 그것들과 어떻게 대화해야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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