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헌의 작품은 먼저 방법과 대상을 강하게 인식시킨다. 사진을 본다기보다는 그 독자의 사진의 방법, 그 만이 선택하는 대상을 본다는 편이 옳다. 그러니까 그의 작품은 단순한 사진으로 현전되는 것이 아니고 사진을 만들어가는 프로세스와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 무엇 인가에 대한 확인이 먼저 요청되는 것이다. 사진은 사진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라는 절대적 명제는 그의 경우 그렇게 중요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사진에서 요구되는 대상의 정확한 파악, 순간의 절대성, 사물에 다가가는 카메라 앵글의 숨 막히는 절도와 같은 것은 사질 그의 작품에 기대면 벌 것 아닌 것이 된다. 사진에 대한 상식을 지니고 있는 이들을 당혹하게 하는 것은 사진이 요청하는 사진적인 기제들을 가능한 한 무화시켜버리는 그의 작화의 태도이다.
이 같은 작화의 태도는 그의 초기작에 해당되는 〈별거 아닌 풍경〉에 이미 잠재되어 있다. 대부분의 사진작가들이 별 것인 것을 찾아 헤매고 있을 대 그는 정반대의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별거 아닌 풍경〉이란 하잘 것 없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풍경들이다. 풍경도 풍경일 수 있는 격조를 지닌다. 그러나 〈별거 아닌 풍경〉은 도무지 풍경으로서의 격조를 지니고 있지 않다. 어쩌면 풍경에도 격조가 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지워가려는 의도랄까.
이번에 발표되는 〈Snow Land〉연작은 앞선〈하늘〉〈안개〉〈숲〉과 맥락되는 작품이다. 눈이 덮인 산야의 풍경은 다른 풍경과 마찬가지로 풍경으로서의 거리가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풍경은 거리에 의해 상대화 되는데 민병헌의 작품에서는 이 거리가 부단히 지워지고 있다. 본다는 것은 본다는 의지에 의해 이루어지는 현상인데 그의 사진 속에서는 이 의지를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렵다. 그것은 상식적인 본다는 의식을 지워나가는 데서 일어나는 또 다른 봄의 의지의 발로인지 모른다. “자유롭게 사물을 바라볼 때, 사물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나는 사진을 ‘눈’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라고 한 작가의 말에서도 본다는 것의 다른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산등성이에 들풀처럼 삐죽삐죽 가까스로 솟아난 앙상한 나목들을 통해 눈에 묻힌 산속의 장면을 가까스로 복원한다. 때로 나무는 아스라이 지워진 흔적처럼 떠오르는가 하면, 수묵화의 엷은 먹 자국이 지나간 자리처럼 흐릿하게 되살아난다. 눈은 어디서고 보이지 않고 눈은 어디서고 보인다. 눈이 덮인 풍경은 눈으로 풍경적 요인을 갖추지만 동시에 눈으로 인해 풍경적 요인들을 지워나간다. 수목의 잔가지 사이로 희끗희끗 묻어나는 눈의 흔적은 이제 무언가 보일 것 같은 기대를 불러일으키지만 조만간 몰아치는 바람에 의해 휩쓸려나가 흔적도 찾을 수 없게 한다.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의 경계선에 모든 존재하는 것은 끝없이 지워져 가고 또 끝없이 되살아난다.
대상이 분명치 않다는 것은 대상이 완결의 상태를 지향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기도 하다. 완결이란 틀 속에 가두어지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상 자체가 작가의 의지에 의해 기념화 되는 것을 작가 스스로 기피함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자연을, 대상을 작품 속에 가두어 두지 않고 자연 또는 대상 자체로 되돌려주려는 의지의 발로에 다름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진 속에 떠오르는 대상은 박제된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가 된다. 그가 현대적 방법의 인화작업-컴퓨터를 이용한-보다 전통적인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기계적인 작업으로 인해 미세한 감각들이 지워질 위험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화의 과정을 통해 되살아나는 미세한 감정을 온전히 향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영택은 “그는 온통 흐리고 애매해서 구분 없는 세상을 판독하고 그 판독한 것을 정확히 환생시키려는 욕망과 재미에 빠져”있노라고 했다.
회화에 있어서도 빛은 중요하지만 사진에 있어 빛은 사진자체를 결정지우는 요체에 다름아니기도 하다. 민병헌의 작품 속에서도 빛의 문제는 대단히 심미적인 양상을 띠고 나타난다. 눈에 덮인 밤의 풍경은 가까스로 빛을 의식할 뿐이다. 하얗게 모노톤으로 처리되는 햇빛 속의 눈밭도 색깔이 바래진 풍경이다. 흑백 톤은 다양한 색상의 표현보다 더욱 섬세한 색상으로 인해 풍부한 여운을 남긴다. 그것은 마치 수묵의 단일한 색조 속에 오색이 함축되어 있다는 동양화의 그것에 비유되어진다. 이 점에서 민병헌의 작품은 다분히 동양화의 특징들을 함축하고 있다. 섬세하게 떠오르는 식물의 표현에선 사군자의 절제된 선조의 구성을 떠올리게 되고 텅 빈 것 같은 여백이 주는 포만의 공간감도 동양화에서만 맛볼 수 있는 토치이다. 가능한 한 그리지 않고 많은 것을 표현하는 동양화의 함축된 세계가 그의 사진에 그대로 겹쳐진다. 먹을 아끼기를 금같이 하라는 절제의 미학이 그의 작품 속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언어의 고도한 절제에 의해 태어나는 시의 그것과도 닮아 있다.
그의 사진은 사진이기보다 그림에 가깝고 그림이기보다 시에 가깝다. 침묵의 사진이라기보다 침묵의 회화에 가깝고 침묵의 회화이기보다 침묵의 시에 가깝다.
CODE NO
: A1164028105
[2006.11.23.목~2006.12.22.금]
SNOW LAND / WALL - 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