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작품이 선과 색채로 대상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선과 색채로 자연에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다” 라는 주장을 고집한 화가는 세잔느이다. 이러한 생각이 우연하게도 정세훈의 작품에서 동등한 모습으로 보여진다.
그의 작품은 일상적인 풍경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물론 초기 그가 드러내는 방식은 그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는 보기 어려운 전형적인 사실풍의 구상회화였다.
표현형식이나 화면 구성의 기본 형태 등도 색다르지 않고 보편적인 풍경의 색채 묘사에 머물러 있었다.
그것은 우리나라 풍경화의 가장 전형적인 현실이었고 구상 화가들의 피할 수 없는 한계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변화를 시도했다. 초기에 오랫동안 나타났던 진부한 인상파 화풍과 풍경은 점점 새로운 형식으로 변모되어 갔다. 그는 흔해빠진 여름산이나 가을산의 풍경을 담아내는 기존의 한 결 같은 방법에 더 이상 머물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의 미술이 선이나 색채로 자연을 모방하는 표현이 아니라 자연을 바라보는 방법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먼저 그는 일일이 그리던 나무나 산을 작은 면으로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형태를 분할하는 선으로 끌어 들였다. 이러한 출발은 그가 자연에 대해 조형적으로 분석하는 자신만의 시각을 가지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이것으로 이미 정세훈 회화의 출발은 새로운 변혁의 차원에 들어와 있다.
뿐만 아니라 이 변화는 수업기에 나타나는 자연을 닮아 가는 과정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회화가 주는 매력과 쾌락을 익혀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정세훈의 회화가 추구하고 있는 세계는 보는 것으로 시작해서, 외부의 세계를 분석하는 입체적 시기로 이행하는 단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자연주의에서 보이는 모방의 습관에서 벗어나 그 자신만의 보는 방법을 새롭게 구축하고 싶었던 것이다.
정세훈은 이것을 위해 자연의 풍경묘사에 붓질은 물론 색채 병치 실습에 열중했다. 자연스럽게 표현의 구체적인 필선과 형태, 그리고 색채에 대한 실험이 이어졌다. 약간은 점묘화법을 연상시키지만 그는 그가 그리던 자연 형태의 단순화에 안정적으로 접근했다. 바로 그 기법은 전면에 선을 긋는다든가 면으로 대상을 인식하려는 스타일로 발전되어 갔다. 정세훈에게 있어 이 풍경 표현의 변화는 화가 모리스 드니가 “평범한 화가의 사과는 먹고 싶지만 세잔의 사과는 마음에 말을 건넨다.”는 말처럼 우리들에게 풍경 보는 법의 신선함을 가져다 주는 것으로 풍경에 마음을 건네고 싶은 모습으로 형상화 되었다.
그만큼 정세훈의 그림은 마치 세잔느가 영원히 변치 않는 사물의 형태를 그리기 위해 사용했던 입체적인 기법처럼 정세훈의 산과 풍경의 표현법은 색채분할형식으로 그의 시선이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그는 이제 그 주제에 일관성과 형식을 부여한다. 풍경을 모티브로 하되 눈에 보이는 실제적인 산의 형태를 거부하는 것이다. 자연의 색 그대로 칠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시선대로 바라보고 그리는 것이다. 이제 정세훈이 만들어 놓은 풍경 속에 색들은 무수히 많은 퍼즐 조각처럼 모여 하나의 거대한 풍경과 산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초기에 보여주던 명암과 원근법이 사라졌다.
자연과 사물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색상이나 입체감도 정세훈 스타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의 그림은 기본적으로 인상파 화풍의 정겹고 지적이고 신선한 이미지와 결합되면서 봄, 여름 아니 사계절의 색채가 나타난다.
마치 전면 회화처럼 작은 띠로 이루어져 물감들이 겹쳐 만들어낸 참신한 풍경화가 태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정세훈의 풍경화에서 주목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자연이 원이나 원뿔, 원통으로 이루어진 것을 확인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러한 인식과 노력으로 일반 풍경화가들이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단순화된 형태로 자연의 모습을 새로 구축했기 때문이다. 이제 비로소 그는 자연에서 본 것을 자유스럽게 캔버스에 옮겨 내는 그만의 방법으로 화면의 양감과 인상파적인 색채를 점묘법으로 형상화시키는 회화적 특질까지를 아우르고 있다. 정세훈은 대상을 보는 방법과 동시에 표현하는 시각의 깊이 까지를 읽어내는 중요한 그림의 철학을 숙지하고 있다. 그 풍경화 이상의 의미를 확장시키는 자유로운 화면 구성과 창조, 그것이 정세훈 그림에 매력을 더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