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활동하는 작가 변종곤이 9.11 테러 사건을 목격한 충격을 고스란히 담은 <Is God Dead?>이란 타이틀의 전시를 2002년에 대구와 서울에서 가진 지 4년 만에 갤러리 분도에서 신작들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한 타이틀을 제시하길 거부한다. 전시 타이틀이 관람자의 의식을 구속해서 자유로운 해석을 방해하기 때문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변종곤의 예술세계는 우연히 발견된 하잘 것 없는 일상의 오브제들을 구성하여 독특한 조형세계를 구축한 20세기 초반 독일의 다다이스트 슈비터스(K. Schwitters)의 작품 '메르츠’(merz: 상업이라는 뜻의 독일어 ‘komerz'에서 나온 말)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또한 변종곤의 작업에서 우리는 1960년대 미국의 네오 다다이스트라 불리는 라우쉔버그(R. Rauchenberg)의 고급미술에 대한 허무주의적 도전과 유사한 점을 찾을 수 있다. 라우쉔버그처럼 뉴요커 변종곤도 창조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작업실 근방 여러 블록을 돌아다니며 그의 예리한 눈이 발견하는 여러 잡동사니들을 모으고 그것들을 배치하고 조합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작품이 탄생되게 만든다. 나아가 1970년대 한국 하이퍼 리얼리즘의 기수였던 변종곤은 자신의 조합물에 회화적 요소를 능숙하게 더한다.
철제 물통 위에 그려진 가장 유럽적인 미국 배우/감독 우디 알렌은 특유의 유머러스하면서도 시니컬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고, 물통 위에는 분홍 앵무새 한 마리가 앉아 있다. 이율배반적인 인간심리를 꼬집고 비트는 유머로 가득찬 왜소한 체구의 유대계 뉴요커 우디 알렌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작고 앙증스런 앵무새는 그와는 다른 방향을 향해 노래를 부르고 있으며 이 둘 사이엔 소통이 불가능해 보인다. 한편 다 빈치 이름이 새겨진 책엔 다 빈치의 ‘인체비례도’가 있고 그 앞에 창녀인지 성녀인지 구분이 안 되는 모나리자를 닮은 여인상이 CD 한 장과 여러 개의 낡은 금속 열쇠를 들고 있다. 이는 최근 소설과 영화로 세계적 이슈가 된 댄 브라운의 <다 빈치 코드>처럼 파격적인 사고로 르네상스와 현재를 단 순간에 이어주는 강력한 시각적 연결고리가 된다. 다른 사람의 귀에는 결코 들리지 않는, 자신의 내면에서 솟구치는 외침 소리를 듣지 않으려 귀를 막고 있는, 뭉크의 유명한 그림 ‘절규’ 속의 인물 아래에 마치 이 인물을 진찰하려는 듯 청진기가 대어져 있다. 이처럼 변종곤은 이번 전시에서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이질적인 오브제들을 조합하거나 오브제에 직접 그림을 그린 감각적인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으며, 그를 통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사회적인 이슈, 여성성, 인간조건 등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치유의 역할을 하려는 시도를 한다. 한편 이번 전시에서 변종곤은 특별히 지난 해 작고한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미술가 백남준에 대한 추억이 담긴 비디오 제작을 통해 백남준에게 존경을 보낸다. 그의 첫 비디오 작품을 기대해 본다.
이처럼 변종곤은 특유의 감각으로 버려진 폐기물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고 있다. 20여 년 전부터 현대 소비사회의 아이콘인 뉴욕에 거주하는, 지극히 도시적인 감성의 소유자 변종곤은 한국적인 정서를 유연하게 뉴욕적인 것에 융합하면서 풍자와 독설의 미학을 전개시키는 우리 시대의 현명한 어릿광대이다.
